마을마다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무서운 전설 중에 

가장 흔한 전설이 바로 공동묘지위에 지어졌다는 것인데 
공동묘지 위에 지어진 한국 동네 top4를 알아보도록 하자. 



4위 부산 문현동 안동네 벽화거리마을

 

부산의 문형동에 위치한 안동네 벽화거리마을은 '돌산마을'로 불리며  
부산의 대표달동네에서 2008년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다시 태어난 마을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의 공동묘지터였다는 이곳은 벽화마을이 된 뒤에도 
마을 골목, 뜰, 현관, 장독대 뒤 등 여전히 무덤이 남아있다.  

 

묘지의 근원은 흐릿하지만 일제강점기 때부터 공동묘지가 있었고, 그 위로  
1960년대부터 판잣집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만들어지고 50년을 달동네로 지냈는데 
2008년 부산시와 남구청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벽화 47점을 그려  
2008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최우수상을 수상한 아름다운 벽화마을이 되었다. 

 

부산의 감천마을처럼 주말만 되면 관광객이 몰려 부적한 곳이지만  
LH의 문현2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되어 철거후 재개발 될 예정이라고 한다. 



3위 미아리 달동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미아리 달동네. 


비좁고 구물거리는  오르막길 그 사이에 위치한 가장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하나이다. 

 


이곳은 일제시대 때 미아리 공동묘지 터였다.
 1910년 일제 식민지정책으로  미아리 공동묘지터가 생겼고 1930년대 더욱 확장됐는데 

 

해방 후 미아리 공동묘지는 광주로 옮겨졌고, 6.25 이후 집터를 잃게된 
피난민들이 하나 둘 이곳에 정착하면서 정착촌이 형성된 것이다.  
각종 소설, 이야기거리로 다루어지던 미아리 달동네는 2006년 미아리일대가  
뉴타운 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재개발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미아 6,7동은 삼각산동으로 미아뉴타운이라고 불리면서  
지금은 오히려 강북구에서 20층 넘는 고층 아파트를 볼수 있는 지역이 되었다.  





2위 이태원 도깨비시장길

 


한남동에 있는 이태원 도깨비시장길은 서울중앙성원에서 한광교해까지 이르는 
600m정도의 길을 말하는데, 이슬람 성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찾곤 한다. 

 


실제로 이 근처는 일제강점기 당시 전부 묘지였다. 
전쟁 후 60년대 들어서  가난한 사람들과 상경한 사람들이 판자집을 짓고 살면서 판자촌이 되었다. 

 

당시 증언에 따르면 집을 지을 때 종종 해골이 나오곤 해서 
악몽에 시달리는 판자촌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이 판자집 근처로 군부대의 유흥주점이 들어서며 현재 이태원의 시작이라는 
술집 텍사스가 형성되었고, 70년대 가게들이 무리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는 이슬람거리, 우사단길 등으로 불리며 이슬람사원 등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끼고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1위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아미동 비석마을은 부산 광역시 서구 아미동2가에 있는 마을로  
부산의 인기 관광지인 감천문화마을과 인접해 있기에 찾는 이가 부쩍 늘어났다. 
비석마을이라는 특색있는 이름은 역사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마을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남겨두고 떠난 후 6.25전쟁때 피난온 사람들이  
이 곳에 마을을 꾸리다보니 남겨진 튼튼한 비석들이 집의 부재료가 됐던 것. 

 

 


계단, 담장의 부재료로 사용되었던 일본인 공동묘지의 비석은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찾아볼수 있어, 괴담이 자주 도는 마을이기도 하다. 

 

현재는 비석을 사용한 건축물 앞에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관광 마을로 발전한 곳으로 숨어 있는 비석들을 찾아내는게 방문포인트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6.25전쟁 그리고 현재 앞으로의 미래까지 보여주는 마을. 
우리내 삶을 담고 있으니 무서움 속에서도 애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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