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6호선 동묘역 9번 출구로 나와 8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서울시 도시재생지역 1호인 종로구 창신동이 나온다. 창신동은 인근 숭인동과 함께 뉴타운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이 추진되다가 2013년 해제되었으며, 서울시가 `창신 및 숭인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2014년 선정한 곳이다.  

 

서울시는 도시재생으로 봉제산업과 낙후된 동네를 살리겠다는 구호 아래 창신·숭인 지역에 예산을 200억원 이상 투입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 지역민 모두가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서 대표적인 도시재생 실패 사례로 꼽히고 있다.

 


백남준기념관, 봉제역사관 그리고 마을회관 등을 짓는 데 약 100억원, 거리 정비와 폐쇄회로TV(CCTV) 설치에 약 70억원 등 주민들이 몸소 체감할 만한 주거 환경 개선보다는 문화시설 도입에 거의 모든 돈을 썼기 때문이다. 창신동 주민 박 모씨(61)는 "이 동네 건물들이 30년 넘게 낡았기 때문에 무너지기 직전인데 도로 포장이나 기념관을 지어봐야 뭐하냐"면서도 "뉴타운이 해제되고 집값이 반 토막 나면서 그때 해제에 찬성했던 주민들도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2012년 1월 뉴타운 출구전략으로 재개발 정비구역을 700곳 가까이 해제시키면서, 재개발의 대안으로 5년째 추진하고 있는 주거지 도시재생 사업에 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는 중이다. 시민들과 전문가 대다수, 심지어 중앙정부 도시재생 담당자 입에서조차도 "도대체 어디에 돈을 쓴 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일부 주민은 돈을 받은 재생 업체나 담당 공무원들을 확인하면서 실제 제대로 예산이 집행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서울시가 올해부터 빈집을 사들이면서 리모델링을 한 뒤 청년 및 신혼부부 등에게 공급하겠다는 이른바 `빈집 재생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앞으로 주거 도시재생 사업에 들어갈 예산이 빠르게 증가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서울 주택 수요의 70% 이상이 아파트를 원하는 환경에서 선호도가 적은 다가구 및 다세대 공급만 늘리는 주거지 도시재생 사업에 막대한 예산 투입은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0일 매일경제가 서울시 주거지 도시재생 사업이 본격화된 2015년 뒤로 시 주거 재생 관련 예산을 분석한 결과 올해까지 5년 동안 총 5822억원이 배정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5년 1091억원, 2016년 662억원, 2017년 656억원, 2018년 489억원 등 벌써 지나간 4년간 3000억원 가까운 돈이 쓰였다. 

서울시가 올해 초 발표했던 `민선 7기 청사진`에 따르면 주택 및 주거재생 사업 부문 예산은 올해 2924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 4년간 쓴 주거지 재생 예산과 맞먹는 수치라 할 수 있다. 2020년에는 2785억원, 2021년 3535억원, 2022년 6079억원으로 앞으로 매년 3000억원 안팎의 막대한 예산이 주거재생에 투입될 예정에 있다. 

 



주거지 도시재생 사업 예산이 대폭 늘어난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년 8월 삼양동 옥탑방 한 달살이를 마치고 나오면서 발표한 `빈집 재생 프로젝트`가 가동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빈집 재생 사업은 2022년까지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빈집 1000가구를 서울시 예산으로 매입하고 빌라 등 다세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하면서 4000가구를 공급하는 사업이다. 올해 2444억원을 투입하고 빈집 400가구를 매입하기로 했고, 내년부터 3년간 매년 200가구씩 추가 매입해 빌라나 연립 형태 다세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할 예정에 있다. 

 

 



모순은 수천억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으나 도로나 기반시설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주택만 개량하는 형태의 주거지 도시재생에 관한 주민 호응이 아주 낮다는 부분이다. 서울형 도시재생 1호 사업지인 창신동의 경우 차 한 대가 지나가기도 힘들만큼 길이 좁다 보니까 오토바이 사용이 많아서 주민 안전을 위협하는 환경에 있다. 주민 이 모씨(52)는 "오토바이가 진짜 많이 다녀서 특히 아이들 안전이 걱정된다"면서도 "도시재생이 이런 거라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거 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서울시가 2017년~2022년까지 6년간 예산 100억원을 들이면서 주거지 도시재생 사업을 벌이고 있는 서대문구 천연동 일대 도시재생지역 역시 `벽화 그리기` 밖에는 눈에 띄는 주거 여건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벽화만 남고 변화는 없는 셈이다. 

서울시 주거지 도시재생 예산을 헛되게 사용한 또 다른 사례는 시가 역사문화 보존을 핑계로 2017년 3월 주민 의견도 묻지 많고 일방적으로 직권해제한 서울 사대문 안의 재개발구역 3곳(옥인1·충신1·사직2)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는 작년 10월 22일 박 시장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시청에서 `옥인1구역 갈등 치유 및 상생협력 선언`을 발표했다. 핵심은 지역 안의 생활문화유산은 보존하면서도 낙후된 환경을 개선하도록 시가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사실. 옥인1구역 약 200가구 주거 개선 및 매몰비용 보조에 시가 약 25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사직2구역은 180가구 주거 재생을 명분으로 벌써 300억원가량 예산을 사용, 충신1구역도 주거 환경 개선 및 매몰비용 보조에 100억원 안팎의 예산이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구역당 수백억 원씩 예산만 낭비되고 실제 주택 공급이 늘어나지도, 도로 및 주차장 등 기반시설이 달라지지도 않아 벌써부터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한 자치구의 도시재생 담당자는 "재생지역 주민 의견을 조사해보면 도서관이나 마을회관은 필요 없으며 도로 확장이나 주차장 설치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박물관이나 마을회관을 짓는 데 대부분 예산을 쓰니 주민 입장에선 체감이 안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서울 전체 주택 수요의 75.1%는 아파트로 나타났다. 서울시민 4명 가운데 3명꼴로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데 도시재생은 저층 주거지만 늘리면서 주택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새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세대주택은 도로 등 기반시설이 확실하게 확보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주차시설도 아파트에 비해 열악하다"면서 "주민들이 원하는 유형의 주택 공급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재원 기자 /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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